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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전력도매시장 구조 개선 방향」 핵심 정리경제상식 소개 2025. 9. 5. 08:26반응형
오늘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간한 KDI FOCUS(통권 제144호, 2025년 9월) 보고서를 토대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전력도매시장 구조 개선 방향을 심층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이지만, 동시에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전력거래량의 변동성이 커지고, 기존 발전소의 가동률과 수익성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줍니다. 따라서 단순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전력도매시장의 가격체계와 구조를 함께 개편해야 지속가능한 전력 수급 체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1.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시장 환경 변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전력시장은 양적·질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2001년 10개사에 불과하던 시장 참여자는 2023년 6,333개사로 급증하였고, 같은 기간 전력 수요도 257.7TWh에서 546.0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이는 전력시장이 과거 소수 독점 구조에서 다수의 발전사와 판매사가 참여하는 경쟁적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재생에너지 비중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2001년 전체 발전의 0.04%에 불과하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5%까지 확대되었고,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18.8%, 2038년에는 30%에 가까운 29.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간헐적 공급원(intermittent source)’이라는 점입니다. 햇빛과 바람은 일정하지 않아 시간대별·계절별 발전량 편차가 커지고, 이는 전력도매시장의 거래량 변동성을 확대합니다. 예컨대 태양광 발전 비중이 높은 낮 시간대에는 전력 공급이 과잉되어 도매시장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해가 진 저녁에는 전력 구매 수요가 급증해 거래량의 진폭이 커집니다. 실제로 2023년 13시 기준 일일 전력거래량의 월별 최대 차이는 2017년에 비해 27%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히 친환경 에너지 보급의 성과라기보다, 전력 시스템 전체의 ‘예측 불가능성’을 키우는 새로운 도전 과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2. 전력도매시장의 기본 구조와 한계
한국의 전력도매시장은 크게 전력량(energy), 용량(capacity), 보조서비스(ancillary service) 세 가지 기능으로 구분됩니다. 전력량은 실제로 공급된 전기에 대해 지급되는 가격이며, 이는 하루 전이나 실시간 거래를 통해 결정됩니다. 용량 가격은 실제 발전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즉시 가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행위’에 지급되는 보상입니다. 보조서비스는 주파수·전압 안정화, 급격한 수급 변동 대응 등 전력계통의 안전을 지탱하는 핵심 기능입니다. 그러나 국내 도매시장은 이 세 가지 가격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전력도매가격은 발전사가 직접 입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전거래소가 연료비 기반 변동비를 사전에 평가해 산정합니다. 이 방식은 연료비가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에는 적용하기 어려워, 재생에너지는 사실상 시장을 거치지 않고 우선 구매됩니다. 용량 가격 또한 해외처럼 시장경매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1998년 준공된 신인천복합발전소 건설비를 기준으로 고정단가를 매년 물가에 연동하는 경직적 방식입니다.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수요·공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전 연도 공급 실적에 배정액을 나누어 산정됩니다. 결과적으로 수요가 늘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역설적 구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전력시장에 필요한 유연성과 안정성을 저해하고, 신규 투자 유인을 떨어뜨린다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3.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져오는 가격 변화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도매시장 가격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첫째, 재생에너지 발전은 변동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전력도매가격(SMP)을 평균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 경우 화력·원자력·가스발전 등 기존 발전원들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설비 투자 유인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동일한 수준의 예비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용량 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둘째, 태양광·풍력의 발전량은 기상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다른 발전원들의 수익은 더 불확실해집니다. 이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는 위험을 회피하게 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용량 가격은 자연스럽게 높아져야 합니다. 셋째, 재생에너지 출력이 급격히 줄고 전력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는 ‘급등락 상황’에서는 더 많은 예비용량 확보가 필요합니다. 이 역시 용량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동시에 보조서비스 가격도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함께 상승해야 하는데, 이는 주파수와 전압이 순간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잦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분 단위의 주파수 제어를 담당하는 1차 예비력은 2021~2024년 사이 33.3% 증가했을 만큼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도매시장에 ‘저렴한 발전원’이라는 장점과 동시에 ‘더 높은 보상 체계 필요성’이라는 상반된 신호를 던지고 있습니다.
4. 우리나라 전력도매시장의 경직적 가격 구조
문제는 이러한 가격 변화가 한국 전력도매시장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내 SMP는 연료비를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시장 수요·공급의 미세한 변화가 가격에 반영되지 못합니다. 용량 가격은 신인천복합발전소 건설비에 기반한 고정 구조여서, 기술 혁신, 환경 규제 강화, 금융비용 변화 등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LNG 복합발전기의 기술 혁신으로 투자비가 낮아져도, 혹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투자비가 높아져도 용량 가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보조서비스 가격은 더 심각합니다. 총 배정액을 매년 동일하게 유지한 채, 직전 연도 공급량으로 나누어 산정하는 탓에 수요가 늘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기형적 구조를 띱니다. 즉, 주파수 제어 수요가 늘어난 해일수록 다음 해 단가는 오히려 떨어져, 장기적 투자 유인을 약화시킵니다. 해외에서는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도매가격이 올라가면 용량 가격이 하락하는 ‘시장연동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반면, 한국은 이런 상호작용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국면에서 충분한 예비전력 확보를 가로막고, 장기적으로 전력 공급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5. 해외 전력시장과의 비교 사례
영국, 미국 등 주요국 전력시장은 한국과 달리 시장 기반 가격 체계를 운영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연동된 가격 변화를 보입니다. 영국의 경우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이 32.9%에 달하는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면서 용량 가격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이는 투자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 예비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미국 동부 지역 PJM과 뉴잉글랜드 지역 ISO-NE도 용량 시장을 운영하며, 가스 가격·수요 상황에 따라 용량 가격을 조정합니다. 또한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수요에 비례해 상승해, 투자자들이 배터리·양수발전 등 유연성 설비에 투자할 유인을 제공합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전국 단일가격 체계를 유지하며, 지역별 수급 불균형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수도권에 전력 소비가 집중되고 비수도권에 발전 설비가 몰려 있어 송전망 혼잡과 비용 상승이 발생하지만, 도매가격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는 시장왜곡을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과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해외 사례는 한국이 경직적·행정적 가격 결정 방식을 벗어나, 시장 기반 메커니즘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정책 개선 과제: 시장원리 강화
KDI 보고서는 한국 전력도매시장의 개혁 방향으로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안합니다.
첫째, 가격입찰제 도입입니다. 현재처럼 연료비 기반 평가가 아니라, 발전사들이 직접 입찰 경쟁을 통해 SMP를 결정하도록 전환해야 시장 상황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됩니다.
둘째, 시장 기반 용량 가격 산정입니다. 고정요금제가 아니라 경매를 통해 설비용량을 미리 확보하도록 해야, 투자자에게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면서도 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보조서비스 가격 연동화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배정액을 수요 변동에 따라 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ESS 중앙계약시장과 같은 별도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15년 고정단가 구조라 향후 기술 혁신이나 배터리 가격 하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도매시장 내부의 가격 체계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더 나아가 지역별 도매가격 분리를 통해 송전망 혼잡 비용을 반영하고, 수도권 집중 문제를 완화할 필요도 제기됩니다.
7. 규제체계와 소매요금 연계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전력도매시장 개편은 규제체계와 소매요금 연계 없이는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독립 규제기관의 전문성과 권한 강화가 필요합니다. 전력시장이 세분화되고 시장원리가 강화될수록, 규제기관은 가격 산정 규칙, 시장지배력 감시, 도매·소매 가격 연계 등 전반을 감독할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는 용량요금제를 시장 기반 제도로 전환하면서 규제 역량 부족으로 시장지배력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정하고 투명한 감독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소매요금 체계 합리화가 요구됩니다.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로 전력량 정산금은 줄더라도, 용량·보조서비스 정산금이 더 크게 늘어 총 정산 규모는 오히려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소매요금에 전달되지 않으면, 발전사와 판매사는 한정된 재원 내에서만 수익을 조정해야 하고, 투자 유인은 떨어집니다. 따라서 도매시장의 가격 변동이 소매요금으로 원활히 전달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소비자의 수요 반응이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전력도매시장 구조 개선은 단순한 가격체계 개편을 넘어, 규제·요금·투자 인센티브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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